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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est 작성일25-04-05 09:41 조회1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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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이라고 불린 1666년런던대화재(The Great fire of London)였습니다.
대화재는 많은 걸 태웠지만, 역설적으로 그 잿더미는 더 튼튼하고 강력한 시스템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소방 시스템과 더불어 오늘날 금융의 핵심 중 하나인 ‘보험 산업’이 태동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화마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요즘.
대화재에도 흔들리지 않은 LA 게티 미술관.
철저한 방화 시스템과 혁신적 설계로 예술품을 보호하며, 문화 유산을 지키는 모범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2004년 영국런던의 모마트 미술품 창고의 화재로 유명 컬렉터 찰스 사치의 소장품이 불타버린 사건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고, 지난 2월 초에는 용산.
본격적인 소방호스는 네덜란드의 공무원이자 화가였던 얀 반 데르 헤이덴(Jan van der Heyden)이런던 대화재이후 수동 소방펌프를 개선하며,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부드러운 소가죽을 꿰매어 만든 이 소방호스는 화재진압 방법을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했다.
최초의 가죽 소방호스는 10m, 40㎏에 달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런던 대화재이후 지독스럽게 예방 훈련을 해 왔던 영국에서도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이었다.
아직 히드로 공항의 화재 원인은 무엇인지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다.
결과는 조금 더 기다려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히드로 공항 화재 원인 분석에서도 한국.
유럽 대도시 가운데 그 정도 규모는런던, 파리, 모스크바 정도이며 미국에서는 뉴욕과 LA가 해당된다.
필자가 박사 과정을 거쳐 다년간 근무한 보스턴은.
도쿄에는대화재가 종종 발생했고 2차 대전 때 폭격도 받았기에,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19세기 이전까지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상하이 역시.
1666년런던 대화재이후 각 주택에는 벽난로 화재를 막기 위해 좁은 굴뚝을 설치해야 했다.
4살에서 5살 정도의 아이들이 18인치 굴뚝을 청소하기 위해 팔렸다.
동이 트기 전부터 굴뚝 청소 가방을 메고 “청소하세요(sweep)”를 외치며 다니는 아이들을 ‘작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용인했다.
판테온은 개관 100년 후대화재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건축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서기125년 건축가 아폴로도로스에게 명하여 이를 재건토록 했다.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과 파리의 국립묘지 팡떼옹은 판테온의 아류들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도 이에 뒤질세라 돔 형태의 지붕을 얹었다.
사실 보험은 처음에 해상보험으로 시작됐지만, 1666년 9월 1일런던 대화재(그레이트 파이어)가 발생하면서 화재보험이 상륙하게 됩니다.
3일 동안 런던의 4분의 3 이상이 타버렸으니까요.
그러니까 보험이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오게 된 게 화재 때문입니다.
그러던 1835년 뉴욕에서 대화재가 발생합니다.
1666년런던대화재LA 산불은 1666년 발생한런던대화재를 떠올린다.
1666년 9월 2일 새벽 2시 빵 공장에서 발생한 불은 런던의 3/4 이상을 태워버렸고, 결국 런던을 현대식으로 재건해야 했다.
이 화재는 4일 동안 꺼지지 않으면서 87채의 교회, 1만 3천채의 집이 불탔고, 7만명이 집을 잃었다.
우리나라는런던 대화재나 시카고 대화재 같은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화재사고는 없었지만, 70년대 초반, 71년도, 72년도에 대연각 호텔 화재, 그다음에 서울시민회관 화재 등으로 인해서 수백 명의 생명을 잃거나 다친,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그런 대형화재를 좀 사전에 예방할 수 없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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